[아름다운 동행] 장애인 길벗 보람 느껴요

뇌성마비 정석무씨 외출 돕는 사람들



▶ 정석무씨(휠체어에 앉은 이)의 나들이에 함께한 아름다운 동행 자원봉사자 전명옥씨(左)와 조광수씨. 장마철의 습기찬 바람이지만 평소 외출이 힘들기만 했던 정씨에겐 싱그럽기만 하다. [변선구 기자]

아, 바람이…상쾌해요.

힘겹게 차에 오른 정석무(23)씨가 심호흡을 한다. 장마철 습한 바람결이지만 코끝을 스치는 바깥 바람이 마냥 즐거운 듯 정씨가 어렵게 입을 뗀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정씨가 서울 동작구 대방동 집을 나와 찾은 곳은 용산구 효창동의 장애인 복지시설 한벗회관. 오늘(25일)은 아름다운 동행 자원봉사자 조광수(45.개인택시 운전)씨가 함께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 왕복 2만원에 가까운 택시비를 들여야 하는 정씨에게는 고마운 동행이다.

정씨에게 세상은 장애물로 가득한 정글이다. 한살 때 흑황달이란 희귀병에 걸려 장애가 생긴 정씨는 아홉살까지 기지도, 앉지도 못해 누워만 지냈다. 지금도 제대로 몸을 못 가눈다. 언어장애까지 겹쳐 집에서는 누워만 지낸다. 양손을 제대로 못 써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휠체어 나들이도 어렵다.

어머니 오순남(52)씨는 생활이 벅차 정규 교육도 못 시켰고 나들이는커녕 동네 산책도 제대로 시켜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생활보호 대상자이면서 간간이 파출부 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정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혼자서 한글을 깨우치고 형(25)이 쓰던 8비트 컴퓨터를 물려받아 PC 사용법과 인터넷을 익혔다. 교육방송의 컴퓨터 강좌를 듣거나 책을 구해보며 프로그램 언어 등을 익혔다. 밤을 새워가며 혼자 개인 홈페이지(http:paul81.wo.to)를 꾸미기도 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더 배우는 게 쉽지는 않았다. 공짜로 가르쳐준대도 배우러 가는 길이 멀어서다.

오씨는 지난해 아는 분이 컴퓨터 애니메이션 과정을 무료로 듣게 해준 적이 있다며 그러나 강남구의 학원까지 오가는 게 쉽지 않아 몇번 다니다 포기했다고 말했다.

수소문 끝에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이동봉사와 자활교육을 함께하는 복지단체 한벗을 알게 됐다. 올 3월부터는 이곳에서 매주 두차례씩 웹마스터 과정을 듣고 있다.

강사인 자원봉사자 현세영(22.숙명여대3)씨는 정씨가 독학으로 PC를 배웠지만 수준이 높다며 타이핑에 어려움을 겪는 것 빼고는 웹 프로그래머로 취직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정씨는 언젠가는 직업을 갖고 싶어한다. 취업이 어렵다면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들과 힘을 모아 창업을 할 생각도 있다.

교육을 마친 정씨의 귀가는 자원봉사자 전명옥(46)씨가 도왔다. 10여회의 개인전을 연 중견 설치미술가이자 대학 강사인 전씨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98년부터 매주 한차례씩 거르지 않고 장애인 이동 자원봉사를 해왔다. 이를 위해 경차인 티코를 구입했다.

대단한 봉사가 아니라 카풀(차 함께 타기)이라는 생각으로 해왔습니다.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외롭고 힘든 재가 장애인이나 노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앞으로 아름다운 동행 운동을 계기로 참여하는 사람이 더 늘었으면 합니다.

전씨 등의 자원봉사자가 속한 한벗의 김진현 사무국장은 장애인들도 공연이나 술자리 등 정상인과 다름없는 저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야간 이동봉사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름다운 동행의 자원봉사자나 쉼터.중계센터로 참가하려면 한국자원봉사협의회(02-3210-1730, (www.kcv.or.kr))로 신청하면 된다. 특별히 중증 장애인을 위한 야간 이동봉사에 참여하고 싶으면 한벗(02-393-0661, (www.hanbeot.or.kr))으로 바로 연락해도 된다.

이승녕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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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5 18:41 입력 2004.06.26 08:30 수정